갓 19살의 대학생 베이시스트 신시아는, 대담하고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오디션을 통과한다. 그녀는 <새틴 크레센트> 밴드 멤버로 합류하고 프로 뮤지션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얻어낸다.
<0005 Fear, But Don’t Retreat>
드럼은 없었다. 대신 랩탑에 연결된 드럼머신이 있었다.
실제 오디션은 리디아의 시그널에 맞춰 시작됐다.
“원. 투. 쓰리. 포.”
첫 곡은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 버전의 〈Days of Wine and Roses〉 카피였다.
루이스의 피아노 프레이즈가 먼저 흘러나왔다. 드럼머신은 아주 낮은 볼륨으로 박자만 짚었다. 실제 드러머가 없는 만큼, 리듬의 빈자리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 빈자리 위에 신시아는 자신의 리듬을 조심스럽게 흘려 넣었다.
처음부터 과시는 없었다.
루이스의 피아노 프레이즈가 갑자기 빨라졌지만, 신시아는 화려한 피킹 속주도 태핑도 하지 않았다. 낮고 긴 프렛리스 라인으로 곡 밑을 미끄러지듯 받칠 뿐이었다.
리디아는 처음엔 무표정하게 듣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허밍과 스캣을 번갈아 가며 보컬을 얹었다. 루이스도 피아노로 코드를 슬쩍 바꾸었다.
신시아는 무너지지 않고 자신의 흐름을 유지했다. 아니, 흐름을 고집한다기보다 세 사람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듣고 있었다.
어느 순간 캐티가 트럼펫으로 일부러 삐딱하게 치고 들어갔다.
신시아는 눈만 크게 떴다.
하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연주하는 긴 프렛리스 베이스 라인은 잠깐 흔들린 듯하다가, 자연스럽게 캐티의 트럼펫 밑으로 돌아 들어갔다.
오디션용으로 짧게 잡은 곡이었다. 첫 시험곡은 금방 끝났다.
캐티가 씩 웃었다.
“어라. 애가 겁은 많은데 도망은 안 가네.”
루이스가 조용히 말했다.
“그게 꽤 중요하죠.”
루이스가 신시아를 바라보았다.
“신시아. 방금 내가 일부러 프레이즈 진입을 조금 당겼어요. 알아차렸나요?”
“네.”
신시아는 베이스 넥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래서 미즈 생클레어의 왼손이 어디로 옮겨가는지 봤습니다.”
루이스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
“좋은 판단이에요.”
캐티가 곧장 웃었다.
“요우! 너, 루한테 칭찬받았다. 합격이네.”
신시아가 살짝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제 겨우 첫 곡…… 아직 제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린 것도 없어요.”
리디아는 거기서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알아. 그래서 몇 곡 더 시켜보려고 해.”
그러자 캐티가 트럼펫 마우스피스를 닦던 마른 천을 옆으로 휙 내려놓으며 피식 웃었다.
“Hon, 우리 따라올 수 있겠냐?”
피아노 앞의 루이스는 살짝 웃음기를 띠며 물었다.
“바로 갈까요?”
신시아는 크게 겁먹은 것 같지 않았다. 긴장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웃으며 자신감을 내보이는 얼굴도 아니었다.
그 대신 차분하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따라가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프렛리스 베이스의 현을 툭 튕겼다.
둥둥둥.
둥— 두두두.
둥둥.
캐티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어쭈. 얘 좀 보게.’
루이스도 아주 작게 미소 지었다.
‘어린데 의외로 배짱이 있네요.’
두 사람은 짧게 시선을 교환했다.
리디아가 손을 들었다.
“원, 투, 쓰리, 포.”
<0006. 오디션 합격>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곡까지 모두 마치고, 이제 다섯 번째 곡이 시작되었다.
캐티가 먼저 달려 나가 트럼펫으로 짧고 날카롭게 공기를 찢었다.
조금 전까지의 부드러운 스탠더드 분위기는 사라졌다.
그 순간 신시아의 진입이 아주 조금 늦었다.
하지만 다음 박자에서, 그녀는 도망친 것이 아니라 길을 확인한 뒤 따라붙은 것처럼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소절에서는 오히려 그녀의 베이스가 탄력 있게 튀어나갔다.
다섯 번째 곡이 끝나고, 오디션은 종료되었다.
연습실 안에서 네 사람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캐티가 먼저 물었다.
“방금 세션에서 넌 딱 한 번 나섰어. 왜지?”
신시아가 조금 놀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아, 죄송합니다.”
캐티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아니, 왜 사과를 해? 이유를 물어본 건데.”
리디아가 신시아를 바라보았다.
“네 판단이었니?”
신시아는 잠시 자신의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제…… 손가락이 그렇게 판단했어요.”
세 사람은 말없이 그녀를 보았다.
신시아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이 곡에서는 나설 때라고요.”
그 순간 캐티가 폭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핫……! 얘, 완전히 재즈 체질이네.”
리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루이스도 차분하게 말했다.
“맞아요. 재즈를 할 줄 아는 아이예요.”
신시아가 계속 따라오기만 했다면, 세 사람은 망설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아이는 딱 한 번 나섰고, 그 한 번이 과하지 않았다.
리디아가 말했다.
“정말 좋았던 건, 네가 아까 나설 때도 화려하게 난사하지 않았다는 점이야.”
캐티가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딱 필요한 만큼. 하지만 확실하게 바닥을 깔아버리더군.”
루이스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드디어 우리의 사운드가 흩어지지 않을 플로어가 생겼다…… 그런 느낌이었어요.”
신시아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리디아가 종이를 꺼내 내려놓았다.
“이제 계약서를 쓰자.”
신시아가 눈을 깜빡였다.
“계약서요?”
“넌 아직 학생이니까 풀타임 근로계약은 무리겠지만.”
“근로계약이요?”
신시아는 계속 눈을 깜빡거리고, 리디아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이 밴드는 엄연히 법인이야. 우리 세 사람이 지분을 나눠 투자한 LLC지. 그러니까 넌 우리가 채용하는 최초의 직원이다.”
신시아는 그 말을 천천히 되뇌었다.
“직원…….”
리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널 우리 밴드의 새 베이시스트로 채용한다고. 일단 파트타임으로 하자.”
<0007. 계약서 서명 후>
[내 여동생이 트럼페터로 있는 밴드가 있다. 리듬 섹션 보강이 필요해서 멤버를 찾는 중이라고 하더구나. 내게 쓸 만한 애가 없냐고 묻길래 널 강하게 추천했다. 넌 그만한 실력과 가능성이 있는 애니까. 다만 뉴올리언스 기반 밴드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는구나. 비행기 티켓을 비롯한 경비는 그쪽에서 내준다고 했으니, 생각이 있다면 오디션을 보렴.]
그렉 윌슨 교수님의 메시지와 전화를 받고, 신시아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버클리 음대에서는 재학생이 실전 공연이나 음반 제작에 참여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장려했으니까, 신시아는 결국 오디션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앞으로의 경력에 한 줄 보탬이 된다면 좋겠네. 그 밴드에서 세션으로 몇 번 뛰면 되겠지.’
그러나 지금, 신시아는 근로계약서의 빽빽한 조항들을 살펴보면서 자신이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왔음을 깨달았다.
근로계약은 1년 단위.
연간 최소 공연 횟수.
의무적인 리허설 참여 시간.
그리고 의료 목적으로 인정된 것 이외의 약물을 복용하지 말 것?
SNS를 이용해 논란을 일으키지 말 것?
‘뭐, 이건 밴드의 품위를 지키는 의무라고 이해되지만…… 이건 또 무슨 조항이지? 체력과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고?’
신시아는 근로계약서에서 눈을 떼고, 눈앞의 세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다들 미인이었다.
각자 옷은 편하게 입고 있었지만, 이 세 사람이 밴드 전용으로 디자인된 무대의상을 입고 공연하는 모습도 유튜브에서 찾아본 적이 있었다.
공연을 위해 체력을 유지하라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신시아는 세 사람의 몸에 딱 맞게 제작된 무대의상을 떠올렸다.
‘……아. 그래서 체중도.’
“왜?”
신시아가 화들짝 계약서로 시선을 돌렸다.
“아뇨. 유념하겠습니다.”
계약서는 두 부였다.
신시아가 두 장의 마지막 페이지에 차례로 서명했다.
리디아는 그중 한 부를 받아 확인한 뒤 자기 서류철에 끼웠다. 그리고 신시아 몫의 계약서를 두꺼운 봉투에 넣다가,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이름을 천천히 읽었다.
“신시아 에스더 레노스키. 좋은 이름이구나. 폴란드계인가?”
“네. 폴란드계 유대인이요. 그렇지만 하누카를 지내진 않습니다.”
“아…… 종교까지 물어보려던 건 아니었어. 실례했네.”
리디아는 봉투를 신시아에게 건넸다.
“지금은 1월 초니까 아직 방학이지. 부모님 댁에서 같이 지내니?”
“네. 부모님은 빵집을 하시고…… 제가 방학 때 도와드리고 있죠.”
“다른 가족들은?”
“원래 간호사였다가 구급대원으로 옮겨 간 오빠가 있죠.”
리디아가 피식 웃었다.
“멋지네. 나도 간호대학 다니고 있었어. 팝가수로 데뷔하기 전까지는.”
“아……?”
“내 오빠 중 한 사람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해안경비대에 있어.”
리디아가 의자에 기대며 웃었다.
신시아도 조금 긴장이 풀린 얼굴로 웃었다.
루이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캐티가 곧장 끼어들었다.
“루, 나중에 천천히 말하자. 네 경력을 늘어놓으면 얘 겁먹어.”
그러자 신시아가 말했다.
“미즈 생클레어. 줄리아드 재학 중에 콩쿠르에 입상하셨던 기사도 찾아봤어요.”
말을 끝낸 신시아가 조금 머뭇거렸다.
“아, 제가 너무 많이 찾아봤나요?”
“아니에요.”
잠깐 웃은 루이스가 물컵을 내려놓았다.
신시아가 덧붙였다.
“시의원님 부인이신 것도 봤어요.”
루이스가 눈을 깜빡였다.
“어머, 그건 기사로는 안 나왔을 텐데?”
“최근 자선행사 안내문에서요.”
캐티가 씨익 웃었다.
“나에 대해선?”
신시아가 잠시 머뭇거렸다.
“어…… 독학형 천재 트럼페터라는 리뷰와…….”
“오.”
캐티가 웃음기 머금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리고? 또?”
“……어, 음…….”
신시아의 귀끝이 빨개졌다.
“……동성 배우자가 있으시다고…….”
캐티가 윙크했다.
“맞아! 내 아내는 정말 예뻐. Exactly! My wife is cute.”
신시아는 어쩔 줄 몰라 얼굴이 벌게졌다.
리디아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캐티를 잠시 물러나게 하더니 말했다.
“신시아. 캐티가 사람 놀리는 데 거리낌이 없는 편이야. 혹시 불편한 게 있으면 내게 바로 말해.”
신시아의 눈이 커졌다.
“……네?”
“캐티가 선을 넘으면 내가 끊을 테니까. 새 멤버가 적응하는 것도 중요해.”
“아, 아, 아뇨!”
신시아가 거의 자리에서 튀어 오르듯 손을 흔들었다.
“아닙니다! 미즈 피셔께선 제게 너무 잘해 주시는걸요!”
캐티가 어깨를 으쓱하며 깔깔 웃었다.
“세상에, 나 만난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벌써 날 변호해? 이렇게 착한 애라니.”
그러자 루이스는 웃음을 참고 고개를 숙였다.